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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인에 취한 ‘만화’
지난 2008년 안방에선 김주혁 한혜진을 타이틀롤로 앞세운 와인드라마 한편이 안방을 찾았다. ‘떼루아(SBS)’다. 제목 그대로 국내 안방에서 와인을 전면으로 끌어 온 최초의 시도였던 드라마의 완성도를 위해 배우들은 국내1호 소믈리에의 교육을 받으며 와인에 대한 전문지식을 대사와 행동으로 풀어냈다.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당시 워낙에 화제를 모으고 있던 경쟁작 ‘에덴의 동쪽(MBC)’과 맞붙은 탓이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와인’을 대중의 곁으로 가져오는 데에 일조했고, 드라마로서의 스토리와 구성 역시 탄탄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와인이라는 주류의 지식 부재에서 오는 갈증을 풀어주기에 드라마는 빈약했다. 65분의 매회 방송분에서는 인물과 인물이 엮여 갈등과 사건을 만들어야 하는 미니시리즈물은 아무리 와인드라마라 해도 오롯이 그것 자체에 집중하긴 쉽지 않을 터. 때문에 보다 와인에 가까이 접근하고 싶은 와인 드렁커에게 드라마가 보여주는 자잘한 정보들은 허기만 유발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본격 와인 관련 서적을 뒤적이자니 ‘소믈리에가 될 것도 아닌데’라며 과한 생각들이 똬리를 틀게 된다.

이럴 땐 와인에 흠뻑 빠진 만화가 제격이지만 사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와인 관련 만화책은 그리 많지 않다. 스토리를 가져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만화가 두 편, 와인에 관한 전문지식들을 그림과 대화를 통해 전한 본격 와인 만화가 두 편인 정도다. 


▶ 한 눈으로 보는 와인 지침서 ‘만화로 보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와인(바롬웍스)’=이 만화는 세계 최초의 만화로 된 와인 입문서다. 일본 최고의 인기 작가 다지마 미루쿠의 2004년판 만화로 와인에 대한 기본 정보에 충실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작가인 다지마 미루쿠는 알아주는 와인 드렁커다. 와인에 심취해 10여년 이상 그것을 마셔온 데다 직접 프랑스로 와인 견학을 했을 정도의 마니아다. 이 만화는 때문에 작가 다지마 미루쿠의 와인 체험담이랄 수 있다. 수많은 와인을 접하며 지식이 부족해 생긴 실수담이 그려졌으며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생생하게 담겼다.

처음 와인을 접한 당시부터 이후 10년까지의 성장기가 담겼기에 초보자들을 위한 실용서가 될 수도 있고, 구체적인 고급정보가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만화로 보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와인’이다.

일례로 라벨 읽는 법부터 와인에 대한 명칭을 알려주고, 와인을 마실 때 필요한 기본적인 매너(지나친 격식은 도리어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도 이 책의 지침이다)를 일러주며 와인을 마시고 즐길 때의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게 해준다.

거기에 와인에 대한 조언도 있다. 비싼 와인은 무조건 좋고 값싼 와인은 나쁘다는 잘못된 인식을 콕 집어 설명하며 와인을 가장 잘 즐기는 핵심은 형식이 아닌 마음에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2005년 발행된 이 만화는 지금까지 14쇄가 인쇄됐고 2만4000부가 판매됐다.

▶ ‘脫와인콤플렉스’를 위하여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김영사)’=국내에 출간 번역된 단 네 편의 만화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나라 작가의 만화가 있다. 바로 이원복 덕성여대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다.

이원복 교수는 독자들에게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로 가장 유명하지만 그는 꽤나 유별한 와인애호가다. 작가 개인의 취향이 방대한 자료를 알기 쉽게 풀어재는 재주와 만나니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은 ‘먼나라 이웃나라’ 못지 않은 깊이있는 와인 역사 만화책으로 거듭났다.

여기에는 퐁파두르 부인과 프랑수아 왕자가 로마네 콩티를 손에 넣기 위해 벌인 경합, 샹파뉴(샴페인)를 널리 퍼뜨린 클리코 미망인의 일화 등이 담겨있다.

물론 시작은 기초부터다. 와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한 와인의 그 장구한 시간들도 펼쳐내며 이원복 교수는 우리에게 내재된 ‘고급 주류 와인 콤플렉스’를 한 꺼풀 벗겨내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 와인 돌풍의 주역 ‘신의 물방물(학산문화사)’=일본 작가 아기 다다시의 ‘신의 물방울’은 국내에 와인붐을 몰고 온 첫 번째 만화다. 와인에 대한 본격적인 지식을 전달했던 앞의 두 편과는 달리 스토리를 가지고 달려가는 세련된 와인 만화가 바로 ‘신의 물방울’이다.

주인공으로 명명된 칸자키 시즈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평론가의 아들이다. 하지만 와인이라곤 단 한 방울도 마셔본 적 없는 이 남자는 맥주회사의 영업사원이다. 평범했던 그의 인생에도 변화의 시기가 찾아온 것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였다.

그러나 이내 아버지의 죽음보다 더 큰 위기가 닥친다. 아버지의 유산은 '1년 후 12병의 위대한 와인과 그 정점에 서 있는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는 한 병의 와인을 맞추는 자'에게 상속한다는 날벼락같은 유언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칸자키 스주크는 전도유망한 와인평론가이자 아버지의 또다른 양자 토미네 잇세와 본의 아닌 대결을 하며 스토리는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2005년 12월 한국에 소개된 '신의 물방울'은 현재까지 19권이 발행됐으며 11월말 20권이 밸행 예정이다. 총 발행부수 250만부를 기록한 이 책은 명실공히 본격 와인 만화라 일컬을 만하다.

▶ 스토리와 만난 와인의 역사 '소믈리에르(학산문화사)'=아라기 조 원작의 소믈리에르는 제2의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며 국내에도 상륙했다.

만화는 여성 소믈리에 아츠키 카나의 홀로서기 과정을 보여주는 한 편의 성장드라마다. 흔하디 흔한 소재가 와인이라는 줄기를 만나 다채로운 빛깔을 만들게 된 이 만화는 와인의 역사와 배경 등 다양한 지식들이 습득 가능하다. 스토리가 풍부하게 녹아있으나 그 역시 하나의 와인에 얽힌 스토리와 만나기에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전문서적 못지 않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성 소믈리에 이츠키 카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토리는 단순하다. 이츠키는 자신이 자란 스위스의 시설에서 아이들과 함께 와인을 만들며 생활하던 중 도쿄의 한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 ‘에스푸아르’에서 한때 와인 천재로 불렸던 소믈리에 카타세 죠 밑에서 일을 하고 그 곳에서 독립해 홀로 성장해 나가는 한 소믈리에르의 성장 이야기가 단숨에 읽힌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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