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익갤러리는 요즘 들어 국내 화랑들이 너나없이 ‘돈 되는 외국 유명작가’에 눈 돌리는 상황에서 국내 작가를 꾸준히 발굴해 소개하는 데 힘써왔다. 국내 컬렉터들이 외국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음에도 ‘될성 부른 우리 작가’를 찾아내 국내외에 널리 소개하고 있는 것. 전도유망한 작가를 집어내는 이 대표의 눈은 예리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달 말 송현동 화랑에서 10주년 기념전 준비에 바쁜 이화익(54)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10주년이 되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작가들이에요. 김덕용 김동유 이정웅 작가 같은 이들은 무명이나 다름 없던 시절에 만나 이제 어엿한 월드스타로 부상했어요. 그들의 끈기와 예술혼에 박수를 보냅니다. 설원기 임동식 정보영 최영걸 김정선 등 많은 작가들이 떠오르네요”며 작가들 이름을 잇달아 호명했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이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아 미술감상을 즐겼고, 대학원에선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그리곤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1기 큐레이터’로 미술계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공직(국무총리실 직원)에 몸 담았던 남편(정두언 의원) 월급이 70만원이었어요. 그 걸론 아이들 키우며, 제 학비(박사과정) 내기가 어려워 취직을 하게 됐죠.”
그렇게 국립현대미술관에 적을 두고 6년을 일했고, 해외연수를 떠나는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2년여를 살았다. 귀국 후에는 국내의 대표적 메이저화랑인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을 만나 그 밑에서 6년간을 일했다. 미술관과는 또다른 상업화랑의 시스템과 전시기획 등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곤 2001년 독립해 인사동에 작은 화랑을 차린 것. “2000년대 초에는 외환위기 직후라 우리 경제가 많이 어려웠죠. 화랑 개업을 우려하는 시선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라 밀어붙였죠.”
그는 인사동 작은 건물 2층에 ‘이화익갤러리’라는 간판을 내걸고, 차우희 작가 개인전으로 개관전을 열었다. “인사동에 둥지를 틀었더니 좋은 점이 많았어요. 점심 먹고 인사동을 한 바퀴 휙 돌면 한국현대미술이 한데 보였으니까요”라고 회고한 이 대표는 그 때 발굴한 김덕용 김동유 이헌정 이정웅 등 유망작가들을 널리 알리는 데 총력을 쏟았다. 2005년에는 서울 북촌 초입의 송현동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리곤 어느새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물론 힘든 때도 적지 않았다. “화가 김덕용(50) 선생 같은 분은 교직에 종사하며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늘 시간이 모자랐죠. 그래서 제가 ‘선생님, 학교 접으시고 작업에 올인하시면 어때요? 제가 작품 열심히 팔아볼게요’라고 전업작가의 길을 권유했어요.” 그러자 작가는 학교를 그만 뒀다. 몇몇 작가들 또한 그 뒤를 이어 전업작가로 나섰다. 그런데 2003년 이 대표는 위암이 발병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자 이들 생계 걱정에 마음이 더욱 초조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지금도 우리 미술시장은 원활치 못하나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역량과 독창성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해외에서 오히려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그 방증이죠”라고 밝혔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동유, 최영걸, 이정웅, 정보영 같은 작가들이다. 이 대표는 이들 작가의 작품을 크리스티 홍콩 경매 등에 선보여 좋은 성과를 맺게 하고 있다. 해외에선 이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저라고 왜 외국 유명작가 작품을 가져다 파는 일을 안하고 싶겠어요? 덜 알려진 작가를 발굴해 소개하는 일 보다 훨씬 수월한데 말이죠. 한때 저도 중국작가 전시를 열기도 했어요. 그런데 해외 미술계에 나가보면 ”당신 화랑은 어떤 작가를 보유하고 있느냐?“고 물어요. 우리 화랑만의 독자적인 색깔과 컨텐츠가 있어야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거죠. 힘들더라도 우리 작가를 열심히 키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늘 새롭게 변화하는 현대미술이 좋고, 작업에 매진하는 작가들이 좋아 앞뒤 재지않고 살아온 10년이지만 때론 정치인 남편에게 누가 될까봐 조심스러웠다”며 ”앞으로도 한국 현대미술의 독특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알리는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번 전시 수익금 중 일부는 서울대 어린이병원 후원회를 통해 심장병어린이의 치료및 수술비로 지원할 예정이다. 이화익갤러리와 함께 해온 38명의 작가들 또한 이 대표의 취지에 공감해 기꺼이 동참키로 했다.
한편 이번 10주년 기념전은 전시장 디스플레이를 기존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했다. 단순히 사각의 화이트큐브 공간에 작품만 설치하던 것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서 익숙한 디자인 가구들(가구 협찬 Cherish)을 배치해 전시장을 아늑한 거실 분위기로 꾸몄다. 1,2부 전시기간 중 화랑에 설치된 가구가 판매될 경우 수익금 일부도 서울대 어린이병원 후원회에 기부할 계획이다. (02)730-7818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