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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소아 피노 컬렉션’ 한국전 위해 방한 佛피노 회장......찍는 작품마다 최고가…미술계의 마이다스
제프쿤스·데미안 허스트 등\n그가 찍으면 모두 정상급 스타\n\n규범 뛰어넘은 미술에 매혹\n2000여점 넘는 컬렉션 자랑
맨주먹으로 시작해 구치, 이브생로랑, 발렌시아가, 알렉산더매퀸 등 명품 브랜드를 휘하에 둔 프랑스의 억만장자 명품 재벌 프랑소아 피노(75ㆍFrancois Pinault) PPR그룹 명예회장이 서울에 왔다.
이번에는 명품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수집한 유명 작가들의 기발하고 급진적인 작품과 함께다. 피노 회장은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유명 작가 작품 22점을 모아 선보이는 ‘프랑소아 피노 컬렉션: Agony and Ecstasy(좌절과 황홀)’전 개막식 참석을 위해 내한했다.
게다가 이번 전시 개막식에는 ‘세계에서 작품값이 가장 비싼 작가’ 제프 쿤스(56)까지 피노 회장의 오프닝에 병풍(?)을 치기 위해 내한했으니 그의 가공할 만한 파워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과연 세계 미술계 영향력 1위(영국 잡지 아트뉴스 선정)다운 행보다.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 전관에 내걸린 회화와 조각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도발적이다. 자신의 연인이었던 포로노 스타 치치올리나와 키스하는 모습을 담은 제프 쿤스의 저 유명한 대리석 조각을 비롯해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죽은 소의 심장과 소머리를 넣은 데미안 허스트의 수조 작업도 국내 최초로 선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압권은 일본이 낳은 스타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남녀 조각상이다. ‘마이 론섬 카우보이’와 ‘밀크’로 명명된 두 점의 조각은 앳띤 남녀 한쌍이 자위를 하거나 절정에 오른 순간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 중 ‘마이 론섬 카우보이’ 조각은 미술 경매에서 100억원 넘게 낙찰돼 ‘아시아 생존 작가 작품 중 최고가’에 오른 작품이다.
고교를 중퇴하고 아버지 사업(제재소)을 거들다 오늘날 루이비통그룹(LVMH)에 필적하는 명품 왕국을 건설한 그는 세계 정상급 미술품 수집가로 꼽힌다. 슈퍼 리치 컬렉터 중 늘 1순위로 거론된다. 그는 또 크리스티 경매를 이끄는 미술사업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수집품으로 꾸민 전시에 참석한 그는 한때 ‘명품 브랜드 사냥꾼’으로 불리며 명품 브랜드 M&A에서 혈투를 벌였으나 이제 칠순을 넘어 주름 잡힌 얼굴에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눈빛은 여전히 예리했다. 그 예리한 눈으로 세계 미술계에서 뜰 만한 작가와 작품을 매섭게 골라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명품 브랜드 키우듯 키워 슈퍼스타로 만드는 전략을 구사 중이다.
따라서 요즘 미술계에선 “피노가 손대면 그 작가는 단박에 스타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실제로 그가 관심을 갖고 작품을 ‘매집’하면 대부분 스타가 됐다. 제프 쿤스가 그랬고, 데미안 허스트가 그랬다. 또 무라카미 다카시도 그가 월드스타로 띄워놓았다. 요즘은 중국 작가에 꽃혔다. 그림 한 점이 100억원대를 넘어선 쩡판즈가 대표적이다. 피노는 최근 쩡판즈 작품에 꽂혀 가로 9.5m의 대작(150억원 상회)을 비롯해 10여점을 컬렉션하고, 그를 전폭적으로 밀기 시작했다. 지난 5월 홍콩 아트페어 기간에는 쩡판즈의 대규모 전시를 열어주기도 했다. 황용핑, 장환 같은 작가의 작품도 집중적으로 컬렉션했다. 한국 작가로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있는 이우환 화백이 유일하다.
평소 그는 “미술은 규범을 뛰어넘어 예기치 않은 영감을 주기 때문에 매혹당한다”고 밝혀왔다. 거의 맨주먹으로 명품 재벌이 된 그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의 대화에서 “사업에선 인간의 감성이 가장 주의해야 할 요소다. 그러나 예술에선 반대다. 인간의 감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이는 곧 비즈니스에서의 숨막히는 긴장감을 잊고, 한없는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기엔 아트가 최고라는 것이다.
조명계 홍익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피노 회장이 미술에 열광하는 것은 명품 패션이 예술과 맥이 통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아트는 규범을 뛰어넘어 도발이 가능하다. 그리고 무한의 가치를 지닌다. 명품의 정점에는 미술이 있다”고 분석했다.
총 2000여점에 달하는 피노 회장의 컬렉션 중에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림은 없다. 대신 이 시대의 문제점을 가차 없이 비틀거나 꿰뚫은 파격적인 작업, 기이하고 불편한 작품에 오히려 열광한다. 그 자신이 명품 재벌임에도 자본가를 아프게 비판하고 풍자한 ‘날선 작품’을 선호한다. 이렇듯 ‘도발적인 작품’을 자신이 보유한 유명 갤러리와 미술관을 통해 ‘브랜드’로 만들어내는 것.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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