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에서의 기부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영국의 기부 문화는 학내에서 이루어지는 학생 주도의 기부다. 최근 지진사태와 관련하여 일본 친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선 이벤트가 그 대표적인 예. 그러나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실상은 어떤지, 그 참상을 알리는 무거운 공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직접 만든 일본 음식으로 찾아오는 이들의 배를 든든하게 해주고, 공연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며 함께 어려움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음식을 잔뜩 팔아주고 응원의 글도 남기고 돌아오는 길에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로 꼬옥 안아주던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찡해진 밤. 기부는 언어도 국적도 초월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하였다. 그러나 유학의 악마는 내게 넝마를 입혔다. 옷 한 벌 사 입은 적이 언제였던가. 얼굴에 분 칠한 적이 언제였던가. 출입국 사무소에 여대생의 자아를 반납한 내가 쇼핑을 하는 날이 있었으니, 그날은 결코 나를 위해서만 존재한 날이 아니었다. 영국에서는 조금만 세심하게 찾아보면 나를 위해 쓴 돈이 곧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 질 수 있도록 기업 주도의 기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Cath Kidston의 ‘Global Charity Project 2011’은 이번 달에 내가 만난 주인공이다. 잠비아에 임산부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이 프로젝트는, 이벤트 만을 위한 상품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하여 소비자가 어렵지 않게 기부 문화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장려한다. Cath Kidston처럼 유명 브랜드의 사례를 시작으로 마을의 상점에서도 같은 뜻을 가지고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생겨나고 있다고 하니, 기부는 분명 기분 좋게 전염된다.
즐기며 하는 기부
공연을 하면서 돈을 모금하는 풍경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기에 무심히 지나쳤던 내가 바로 이들을 만났으니, 재능 기부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음반을 팔아 저 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음악 공간에 보태고, 그곳에서 직접 음악을 가르칠 계획이라는 인디밴드. 번화가에서 공연하고 그 수익금으로 주말에는 복지시설을 방문하는 것으로 유명한 음악가들, 행위 예술가들 그리고 코미디언까지. 행인 만큼이나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린 모습에서 아마 영국인의 70퍼센트 이상이 한 달에 한번은 기부문화에 참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기부는 생활이다.
이곳 영국에서 기부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기부의 수혜자들이 정적으로 머물지 않고 동적으로 행동하며 만드는 환경. 그 곳에서 우리는 눈으로 기부의 시작을 보고, 마음으로 상황을 느끼며, 마지막엔 두 손으로 직접 기부한다. 기업가나 유명한 개인의 기부만이 명사로서 신문지상에 남는 것이 아니라, 동사로서 시민의 소소한 일상에서 실현되는 곳. 비단 영국의 모습만이 아니라고 나는 자신한다. 김장훈, 빌 게이츠, 워렌 버핏, 김장훈, 그리고 다섯 번 째는 독자 여러분의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