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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無에 대한 분노의 힘에 동서분할구도 깨졌다
“암하노불(岩下老佛:바위아래 늙은 부처)이라고? 이젠 순진한 강원도 사람 아니래요. 우리가 진신(바보)이나? 거짓말만 귀따굽게 들었는데...내년 대권도 우리한테 물어봐야 될기래요.”

여론조사때 적당히 대답하다 기표소에서는 본심을 표현하는 강원도식 선거혁명 뒷편에는 지난 60년간 겪었던 ‘3무(無)’ 즉, 무시 무관심 무대접에 진저리친 도민의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다.

삼척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모(57)씨는 “보자보자 하니 너무하는 것 아니나. 세력이 세지 않아도 정권이 눈치보게 만드는 충청도 사람들 한테서 마이(많이) 배왔다(배웠다)”면서 그같이 말했다.

지금 강원도민들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더욱 무시당한다’는 진리를 깨우친듯하다. 뿔난 강원도민의 표심은 동서로 양분된 전통적 보혁 대결의 표심 지도를 바꿨다. 동북 지역에 황색깃발이 꽂히면서 무능한 보수는 낙동강 전선에 갇힐 위기에 놓인 것이다.

바보라는 뜻이 감춰진 ‘감자바우’, 언제 굴러내릴지도 모를 바위아래서 태연히 독경하는 늙은 부처같은 심성, 원시적 화전민의 순진함을 내포한 ‘비탈’...‘무던함’ 투성이의 강원도민도 약속불이행, 여권 내부균열, 강원도 무시태도 앞에서 등을 돌린 것이다. 한나라당 강원도당은 벌써부터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걱정하고 있었다.

엄기영후보가 낙승하리라는 예상은 27일 오후6시30분 춘천 적십자사에 마련된 소양동 제2투표소 유권자들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순식간에 깨졌다.

인근 보험사의 20~30대 직원 네댓명이 부리나케 투표소로 뛰어들더니, 현업에서 은퇴한 조모(61)씨가 뒤를 따랐다. 투표를 마친 조씨는 “맨날 찍어줘도 푸대접이다. 아니 무대접이다.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처럼 강원도도 힘이 있어야 한다. 도민의 힘을 짊어질수 있는 사람한테 찍었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송모(여)씨는 “강원도로 이사온지 석달됐다. 인심좋고 풍경 좋은데 대학때 놀러왔을때와 달라진게 없는 것 같다”면서 투표의 화두를 ‘변화’에 두었음을 내비쳤다. 강원도 주요도시의 투표율은 오후7시 이후 10%포인트 안팎 급등했다. ‘악착같이’ 투표하겠다는 유권자가 많았던 것이다.

도청옆 한림대생들도 절반이상은 투표에 참가했다고 한다. 컴퓨터공학과 3학년 김모양은 “선거때가 되니, 몇달전 TV드라마에서 ‘청년실업의 책임이 투표를 하지 않고 권리를 내팽개친 청년 스스로에게 있다”는 대사가 새삼 떠올랐다”면서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투표는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크게 확산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문순 신임 지사가 취임한 28일 춘천의 거리는 선거후일담과 웃음소리로 넘쳐났다. 강원도민 답지 않은 재잘거림에는 통쾌함도 묻어난다. 정치의 해 2012년, 그들은 또 어떤 혁명을 준비할지, 이젠 강원도 본색을 알 수가 없다.

춘천=함영훈 선임기자, 심형준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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