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곡물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007년 이후 곡물가는 2배가량 올랐고 지난해만 세계인구 4400만명이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식량가격지수도 지난해 25% 올라 지난 2월 236.76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식량가격지수가 10% 오르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은 1000만명씩 늘어난다. 올해 수확기 곡물 생산량이 감소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면서 세계 각국의 식량안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그 파장은 후진국에서 훨씬 심각하게 나타난다. 미국인들이 다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정도의 식량가 상승은 소득의 50~70%를 식량에 소비하는 세계 20억명의 빈곤층 사람들에겐 하루 두 끼 식사를 한 끼로 줄여야 하는 타격으로 나타난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식량의 새로운 지정학’이란 최근 기사에서 중동ㆍ아프리카에서 보듯 “식량부족이 세계정치 판도를 움직이는 숨은 동력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수요증가+증산한계’ 복합적 원인=식량부족은 일시적인 식량가 상승에 그치지 않고 일부 국가에서는 혁명과 봉기까지 일으킬 수 있다. 그 이유는 식량가 상승이 과거와는 원인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FP는 과거엔 기온이상이 곡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변수였으나 오늘날은 인구급증으로 수요가 느는데도 지구온난화와 관개용 지하수의 고갈 등으로 곡물 생산량은 늘지 않아 곡물가가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FP는 “매일 밤 지구촌 저녁 밥상에 앉는 인구가 21만9000명이나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간 단위론 전 세계 8000만명을 새로 먹여야 한다. 선진국의 육류 및 유제품 수요증가와 바이오연료 개발붐도 곡물 사용량을 크게 늘이고 있다. 미국의 1인 당 곡물 소비량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인도인의 4배이고, 2010년 미국에서 생산된 곡물 4억톤의 3분의1가량인 1억2600만톤이 바이오연료인 에탄올 증류에 사용됐다.
공급차원에선 지구온난화와 물 부족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통상 기온 1℃가 오르면 곡물수확량은 10% 이상 감소한다. 실제로 지난 2010년 폭염으로 러시아의 곡물수확량은 40%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관개용 지하수를 과잉 사용하게 돼 지하수 고갈을 심화시킨다. FP는 과잉 사용된 지하수로 생산된 식량을 “식량 버블(food bubble)”이라 표현하면서 특히 인도와 중국에서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지하수위가 낮아지면 사막화가 촉진되는데 중국과 몽고, 중앙 아프리카, 그리고 북한에선 이미 토양침식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FP는 “인류는 석유비축량 손실엔 살아남을 수 있어도 토양비축량 손실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시에 버금가는 노력 없으면 식량난 가속화”=각국의 식량안보 전쟁도 심화되고 있다. FP는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아프리카에서 농지를 임대하는 등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면서, 특히 한국이 민관 합동으로 시카고에 곡물회사를 세우면서 다른 나라들도 곧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추세는 현지 주민 및 주변국과 새 갈등양상을 초래하고 있으며 앞으로 정치적 혁명을 동반한 식량폭동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라고 FP는 지적했다.
튀니지의 지네 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과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최근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진 아랍과 중동은 곡물 생산량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용수 부족으로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한 지역으로 나타났다. 다음 수확기로 이월할 수 있는 곡물 비축량이 세계적으로 52일 소비분으로 떨어진 점도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FP는 “만일 세계가 전시(戰時) 속도로 온난화 방지 및 인구억제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다면 전 세계 기하문제는 확산일로를 걸을 것”이라면서 2011년 국제 식량 위기가 새로운 기준으로 고착화되기 전에 국제사회는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