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사과에도 논란 일파만파
서울시내 특급호텔 중 한식당 운영 4곳뿐
식재료, 인건비 부담탓에 홀대
“그런(한복 입은 고객을 제한한다는) 건 금시초문이라 저희 호텔 직원들 전부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14일 서울시내 한 특급호텔 관계자가 전한 업계 분위기는 대체로 일치했다. 지난 12일 장충동 서울신라호텔 뷔페 식당 ‘더 파크뷰’에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입장하지 못한 한복 디자이너(이혜순 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그 파장이 안팎으로 매우 크다. 기준이 모호할 뿐 아니라, 한국적인 것에 대한 배타가 아니냐는 질타의 목소리까지 끊이지 않는다.
▶“트레이닝복도 되는데 한복이?”=호텔신라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해 “품이 넓은 한복의 특성상 옷이 밟히거나, 넓은 소매가 음식물이 닿는 등 여러가지로 고객 불만의 목소리가 수차례 답지함에 따라 작년부터 한복 착용 고객에 대해 주의 사항을 안내하도록 지침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당일 근무 직원의 안내가 미숙해 고객의 화를 돋웠지 입장을 제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초 ‘부피감이 큰 한복은 호텔의 드레스코드 규정상 식당 출입이 안된다’며 입장을 저지했던 것과 크게 달라, 신라호텔이 파문이 커지자 이를 서둘러 무마하기 위해 말을 바꾸고 있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문제가 일었을 당시 파크뷰 지배인까지 나서서 한복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것과 사뭇 다른 태도다. 더구나 올 1월 호텔신라에서 열렸던 이건희 회장 칠순연을 비롯해 삼성가의 혼례식 등에 홍라희 리움 관장과 이부진 사장 등이 한복을 입고 참석했던 사진이 일제히 공개되자 “신라호텔에서 한복 입고 식사할 수 있는 사람은 삼성의 로얄패밀리 뿐이냐"는 네티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호텔업계에서는 이 같은 관행이 의아하다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서울시내의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14일 “피트니스센터 이용고객이나 투숙객들이 많아 트레이닝복을 입고도 뷔페 식당 등에 입장하는 예가 많다”며 “한복에 대한 안내 지침이 있다는 것조차 금시초문이어서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란 상태”라고 전했다. 다른 호텔 관계자도 “뷔페에서 돌잔치나 가족연을 많이 하기 때문에 한복을 입는 건 다반사”라며 “더욱이 우리 호텔 한식당에선 한복 입은 직원들이 직접 서빙도 하는데 한복이 불편하다고 차별하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이날 본지가 확인한 시내 특급호텔에선 고객 복장과 관련한 입장지침이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서울 시내 한식당 운영 특급호텔,4곳 뿐…“한국적인 것은 대접 못받아”=한국을 대표하는 호텔에서 ‘한국적인 것’이 배척당했다는 것에 적잖은 상징성을 부여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신라’라는 호텔명에서부터, 기왓장을 올린 영빈관을 전면에 내세운 서울신라호텔에서 이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이로니컬하다는 것. 고객 개개인의 취향과 상황을 이해하고 고려하기 보다, 한국 최고의 특급호텔로서 신라호텔의 규범과 원칙을 더 중요시하는 삼성의 권위적인 면모를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많다.
일례로 20개에 달하는 서울시내 특급호텔 중 한식당이 있는 곳은 소공동 롯데호텔서울과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등 네 곳에 불과하다. 신라호텔은 2005년에 한식당을 없앴다. 특급호텔이 한식당을 보유하면 외국에서 오는 VIP 고객들에게 한식 체험의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식당을 보유한 시내 특급호텔 관계자는 “한식당은 식재료값과 인건비가 더 많이 들어 운영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메뉴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부진 사장의 사과를 받아들이긴 했으나 "우리 문화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게 정말이지 가슴 아프다"고 토로한 이혜순 씨의 말처럼, 한식과 한복 등 우리 것을 앞장 서서 알려도 시원찮을 대표호텔의 ‘한복 홀대’ 사건은 이래저래 우리의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임희윤 기자/im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