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사고를 낸 후 차량을 버리고 도주하는 ‘음주 뺑소니’가 증가하고 있다. 도주하더라도 대부분 경찰에 검거되지만 사고 당시 음주 정도를 정확히 측정하기란 어렵다. 술의 종류ㆍ음주량 ㆍ체중 ㆍ성별을 바탕으로 사고 당시 음주 상태를 역계산하는 ‘위드마크(Widmark) 공식’이 적용되지만 사고 발생 24시간 이내에만 가능하다. 피의자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며 부인할 경우 음주운전을 입증할 길은 거의 없는 셈이다.
지난 8일 엄모(26)씨는 서울 관악구 ‘패션문화의 거리’ 사거리에서 차를 몰고 집으로 가다 만취 상태로 도로 한가운데를 걷고 있던 A(43)씨를 치고 달아났다. 경찰은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차량 파편을 토대로 역추적해 사건 발생 5일 만인 지난 12일 엄씨를 검거, 13일 구속했다.
경찰은 엄씨의 차량에 타고있던 친구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사고 전날 오후 9시30분부터 새벽3시까지 나이트클럽에서 맥주와 양주를 마신 정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엄씨는 음주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5일이나 지난 상황이라 음주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관악경찰서 교통조사계 관계자는 “함께 술자리에 있었던 친구들은 뺑소니 사고가 난지도 모를 만큼 만취해있었다. 하지만 운전자의 음주여부를 판단할 방법이 없다. 시간이 많이 지나 위드마크공식도 적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엄씨에게는 음주운전혐의(도로교통법 위반)가 제외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도주’ 혐의만 적용됐다.
유명연예인의 ‘음주뺑소니’도 왕왕 발생한다. 지난해 10월 배우 김지수씨는 음주운전으로 앞서가던 차량과 부딪힌 후 차를 버리고 도주했다. 다음날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혈중 알콜농도를 계산한 결과 0.029%로 음주운전 기준인 0.05%에 미치지 못했다. 김씨는 음주운전 혐의는 제외된 채 특가법상 도주 혐의로 지난 1월 검찰에서 벌금 1000만원에 약식기소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 등에는 “며칠이 지나야 음주 측정이 불가능하냐” “음주운전 후 도주하면 단순사고처리 되나”라는 등의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이렇다 할 대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차량 조회를 통해 운전자의 거주지를 파악해서 출동해도 음주운전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압수수색영장 없이는 함부로 집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며 “조금이라도 더 빨리 출동해 잡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나 작정하고 도망간 사람을 잡는 게 쉽지는 않다”고 털어놨다.
<박수진 기자@ssujin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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