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기름 값이 더 싼 주유소로 몰리면서 주유소들이 생존의 기로에서 극과 극을 체험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기름 값이 비싸 유명세를 치른 서울시내 한 주유소는 요즘 찾는 이가 없어 울상이다. 광진구의 한 소형 주유소에선 서울 평균보다 ℓ당 100원 더 싸게 팔아 주유 고객이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었다.
분당이나 강남 쪽으로 내려가는 값비싼 외제차들이 기름을 가득 채우고 가는 일도 전례없이 생겨나고 있다. 또 정유 4사의 폴사인이 없는 ‘무폴’ 주유소나 셀프 주유소들을 찾는 고객도 지역에 따라 10% 이상 늘고 있다.
▶더 싼 주유소 가자…무폴, 셀프만 북적 = 서울시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이 연속 이틀 ℓ당 2000원을 넘은 지난 11일 광진구 동2로 변에 있는 에쓰오일 동이로 주유소는 휘발유를 ℓ당 1898원, 경유는 1698원에 각각 평균보다 100원이상 싸게 판매하고 있었다. 인근과 비교하면 휘발유는 ℓ당 20원이 더 쌌다. 그래서인지 퇴근길에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 행렬은 계속되고 있었다.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석유 수요 감소 우려 등으로 국제 유가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14일 현제 최고가를 보이는 여의도의 한주유소의 휘발유가격이 2,300원에 육박하고 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
이 가격대는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의 결과다. ‘죽음의 동2로’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올 정도로 이 지역은 주유소간 경쟁이 극심하다. 실제 도로변 인근 1㎞안에 주유소가 5곳. 동쪽 방면으로 500m 떨어져 있는 현대오일뱅크 주유소는 견디다 못해 지난해 말 무폴 주유소로 전환했다. 서쪽 방면 1㎞ 위쪽의 무폴주유소는 불법판매로 적발됐지만 싼 가격 때문에 여전히 찾는 손님이 많다 .
권 소장은 “주변보다 20원이 싸면 매출의 20%가 줄어드는데, 최대한 인건비를 줄이고, 물량을 많이 판매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5~6년전서부터 ‘박리다매’식 판매로 유명해진 천호대로 변의 에쓰오일 능동주유소 관계자는 “도로 위에 차량 수가 절대적으로 많이 줄어서 기름 값에 관계없이 손님이 반 이상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넓은 매장에 주유기만 54개인데도 요즘 출근길에는 차량 1~2대만 서 있을 뿐 썰렁하다. 하루 평균 판매 물량도 구정 이전 550~600드럼에서 300드럼으로 확 줄었다. 별 수없이 구정 이후 낮 아르바이트 직원 6명을 내보내야 했다.
▶비싼 곳으로 소문났는데 오겠어요? = 지난 9일 휘발유 판매가 ℓ당 2305원으로 2300원을 넘겼던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경일주유소는 더욱 코너에 몰려 있다.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 밀려 ℓ당 2295원으로 내린 뒤 닷새째 이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애초 국회의원들의 단골 주유소로 인기를 끌었던 곳이지만 매체에 여러번 등장한 뒤 여론을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차량이 뚝 끊겼다. 경일주유소 부사장은 “비싼 곳으로 소문 났는데 총선을 앞두고 오겠냐”며 “요즘은 장기계약한 거래처 차량만 오고 주중 가장 많이 판매하는 월요일에도 50드럼을 못 판다”고 했다. 그는 “임대료, 인건비, 전기료 등을 내면 마이너스여서 기름값을 올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전업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스마트폰으로 주유소 종합정보시스템(오피넷)을 활용해 더 싼 주유소를 찾아 이동하는 알뜰 소비자가 늘면서, 이처럼 가격이 싼 무폴 주유소와 셀프 주유소는 증가세다. 중랑구 상봉동 망우로변에는 지난해 6월부터 셀프주유소로 바꾼 곳이 부쩍 늘어 도로 양편으로 셀프주유소가 6개가 영업을 하고 있다.
SK 중랑교주유소 사장은 “지난해 10월 영업을 개시했는데 다른 셀프주유소와 달리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해 우선 마진을 손해보고 싸게 팔고 있다”며 “요즘은 10~15% 손님이 늘어 하루 100드럼 정도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지숙 기자 @hemhaw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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