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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은 못봐도 다른이의 빛이되고 싶어요”
점역·교정사로 일하는 시각장애인 홍혜진 씨
손 끝으로 글을 읽는다. 묵자(일반 글자)가 시각장애인들이 읽을 수 있는 점자로 점역이 잘 이루어졌는지 살핀다. 그녀의 손 끝은 빠르지만 섬세히 글을 읽어간다. 그녀의 손은 누군가의 눈이 되어 세상을 비추고 있다.
1급 시각장애인인 홍혜진(25ㆍ사진) 씨는 교정사다. 점역ㆍ교정사는 시각장애인이 촉각을 이용해 점자인쇄물을 읽을 수 있도록 일반 묵자를 점자로 번역ㆍ교정하는 전문 직업이다. 일반 활자를 점자로 바꾸는 점역사는 주로 비장애인들이, 점자를 교정하는 교정사는 주로 시각장애인들이 담당한다. 현재 국내에서 291명의 점역ㆍ교정사가 활동 중이며 이중 시각장애인은 141명이다.
혜진 씨는 태어나자마자 시력을 잃었다. 인큐베이터의 산소 농도 조절이 잘못돼 망막질환이 발생했고 결국 앞을 볼 수 없게 됐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커다란 벽과 마주한 혜진 씨. 하지만 그녀는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과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어려운 시간들을 견뎌내왔다.
2006년 천안 나사렛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웠다. 그러던 혜진씨가 점역ㆍ교정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2008년께. 학교 내에 있던 장애학생고등교육지원센터에서 만난 점역교사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국가공인자격증을 취득하면 교정사로 취업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졸업을 1년여 앞두고 있던 혜진 씨도 여느 대학생처럼 취업 걱정이 많았다. 그는 “시각장애인은 취업이 거의 안 된다고 봐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집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수험서에 적힌 글자를 직접 읽을 수 없으니 정보를 습득하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혜진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 내에 개설된 점역교정사 자격증반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결국 혜진 씨는 그해 12월 자격증을 취득했고 1년 뒤인 2009년 12월부터 경상북도 시각장애인복지관 정보직업팀 교정사로 일하게 됐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복권기금을 바탕으로 지원하는 보조공학기기도 혜진 씨가 일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시각장애인용 음성기기인 ‘센스리더’의 경우는 컴퓨터가 묵자로 쓰여진 글을 음성으로 들려준다. 혜진 씨는 소리를 들으면서 내용을 점역할 수 있다. 복권위는 올해 80억원의 복권기금을 장애인의 직업생활을 돕기 위한 보조공학기기 지원에 쓸 예정이다.
혜진 씨는 기회가 되면 사회복지와 관련된 공부를 더 하고 싶다. 당장은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장애가 없는 사람들보다는 느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개인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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