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지난 14일 우리 국회에 보낸 서한이다. 불과 수일 전 모처럼 마련된 대화 테이블을 뒤엎고 나갔던 북한 김정일의 이 같은 태도는 식량난과 민심 이반 사태 해결책은 결국 남한의 대규모 지원밖에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아들 김정은에게 안정적으로 권력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당장 쌀을 구걸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외부 사회로부터 지원을 얻기 위한 북한의 움직임은 당국이 주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여력, 즉 계획경제 부문의 경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가 10년 가량 해오던 한 해 30만~50만 톤의 식량 지원이 끊긴 이후 반복되고 있는 북한의 식량난은 결국 남한을 통해 해결할 수 밖에 없음을 김정일 스스로가 깨달았다는 의미다. 계획 경제의 상징이던 평양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해외 공관을 통해 쌀 지원을 공식, 비공식적으로 부탁하고 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심지어 김정일 정권의 사실상 유일한 옹호 세력인 중국도 한 해 평균 30만~40만 톤의 쌀을 유ㆍ무상으로 원조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한국 내부 갈등 조장도 김정일이 대화 공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이다. 실제 연평도 도발 직후 잠잠했던 한국 내 대화론은 올해부터 다시 목소리를 높히고 있다. 전날 북한의 서한을 받은 국회도 “사과 없이 대화도 없다”는 정부 여당과,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보자”는 일부 야당으로 갈라진 모습이다.
대북 제재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는 국제 사회의 모습도 김정일이 올해 적극적으로 대화론을 펼치는 배경 중 하나다. 미국과 한국, 일본이 지난해 이후 북한 압박에 강한 공조를 형성하고 있지만, 이들 3국의 올해와 내년 선거 일정 등을 감안하면 결국 각자의 길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및 핵 비확산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야만 대화도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때문에 북한의 대화공세가 지속되더라도 진정한 대화국면으로 전환되기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정호 기자@blankpress> choij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