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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데이>‘아덴만’ 작전 마지막 미션 “석선장 살려라” 국민응원 쇄도
“당신은 우리가 아는 최고의 캡틴입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이 성공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공로를 세운것으로 전해진 석해균(58, 삼호주얼리호) 선장.

복부와 팔, 다리 등 3발의 총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 석해균(58) 선장이 1차로 복부에 박힌 총탄을 제거하고 안정을 취하고 있지만 또다시 2차 수술이 불가피 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고향인 밀양과 부산지역에서도 그의 생환을 기원하는 응원의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

해적들의 총부리 앞에서 발휘된 석 선장의 용기있는 행동에 국민들은 감동하고 있다. 삼호 주얼리호를 자신들의 본거지로 끌고가기 위해 혈안이된 해적들은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며 위협했지만 석 선장의 용기는 식지 않았다.

엔진오일에 물을 타 일부러 엔진을 정지시켜 시간을 벌었으며, 해적들을 속이고 지그재그로 방향을 잡아 공해상에서 시간을 벌었다. 해적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제대로 듣지 않는다며 석 선장에게 가혹행위를 가해 골절상을 입었으며, 여명 작전이 시작되자 해적 두목은 일일이 한국인 선원들을 확인해가며 석 선장을 찾아 총격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지역 해운업계에서는 석 선장을 최고의 마도로스로 인정하고 있다. 자신이 맡은 일은 철두철미하게 완수하는 책임있는 선장으로 인정 받아왔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석 선장은 고향과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지냈으며 졸업후, 해기사 양성소를 거쳐 3등 항해사가 됐다.

석 선장의 ‘위기 속 빛나는 리더십’의 배경에는 해군 하사관으로 근무한 5년간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1971년 해군 하사관으로 군 생활을 시작한 그는 3년을 군함에서, 나머지 2년은 진해 해군작전사령부 산하 부대에서 생활을 하면서 훌륭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제대 후, 선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등 항해사, 1등 항해사를 거쳐 지난 2000년 선장이 됐다.

회사에서도 석 선장은 외유내강형 모범적 리더였다. 삼호해운 관계자는 “석 선장이 맡은 화물은 한번도 늦거아 문제가 생긴적이 없었다”며 “자신이 맡은 항해를 위해 미리 항로와 화물 상태를 꼼꼼히 챙기는 등 선장으로서 모범적인 인물 이었다”고 설명했다.

동료 선원들 사이에도 석 선장은 모두가 의지하는 든든한 존재였다. 함께 배를 탓던 선원들은 “선원들의 이름과 신상을 미리 꿰뚫고 있었다”며 “항상 먼저 행동으로 본을 보여 선원들을 이끌었기에 선원들은 석 선장을 아버지나 친형처럼 따랐다”고 설명했다.

아직 석 선장이 완쾌되지 않아 아덴만 ‘여명’작전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의 용기있는 행동 덕분에 무사히 구출된 한국인 선원 7명은 29일 고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윤정희 기자 @cgnhee>cgn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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