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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의 마지막 농담 “김수환 추기경, 저승의 큰 빽”
박완서 문학의 재미는 그가 즐겨 ’농담’이라 부르는 유머에 있다. 그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예리하게 포착하되 가볍게 눙치는 능력이 남달랐다.

그가 최근에 쓴 ’내 식의 귀향’이란 글에서 연륜과 함께 수준급에 도달한 삶과 죽음에의 통찰이 빚어낸 농담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는 친정 쪽 고향이 휴전선 이북이고, 시댁쪽은 대대로 서울에서도 사대문 안을 벗어난 적이 없는 서울 토박이라 명절이 돼도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이년전 추석 두번의 성묘를 다녀온 얘기를 풀어놨다.

다름아닌 남편과 아들이 잠들어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다.

“그들이 먼저 간지 여러해가 지났건만 갈 때마다 가슴이 에이는 듯 아프던 데가 이상하게 정답게 느껴지면서 깊은 위안을 받았다”며, 자신의 누울 자리를 소개한다.

“비석엔 내 이름도 생년월일과 함께 새겨져 있다. 다만 몰(沒)한 날짜만 빠져 있다. 나의 사후 내 자식들은 큰 비석이나 아름다운 비명을 위해 고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여긴 어떤 무덤도 잘난 척하거나 돋보이려고 허황된 장식을 하지 않는 평등한 공동묘지이다"고 설명한다 .

그는 김수환 추기경의 묘소가 자신의 묘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게 저승의 큰 ’빽’이라며 농담을 걸친다.

그러더니 한 발 더나가 “다만 차도에서 묘지까지 내려가는 길이 가파른 것이 걱정스럽다. 운구하다가 관을 놓쳐 굴러 떨어지면 혹시 저 늙은이가 살아날까봐 조문객들이 혼비백산한다면 그건 아마 이 세상에 대한 나의 마지막 농담이 되겠지. 실없는 농담 말고 후대에 남길 행적이 뭐가 있겠는가”고 초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인은 정주영회장이 소떼를 끌고 고향을 갔듯이 자신도 제 식대로 고향에 가고 싶다는 뜻을 비친다.

"완행열차를 타고 개성역에 내리고 싶다. 나 홀로 고개를 넘고 넓은 벌을 쉬엄쉬엄 걷다가 운수 좋으면 지나가는 달구지라도 얻어타고 싶다. 아무의 환영도, 주목도 받지 않고 초라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게 표표히 동구 밖을 들어서고 싶다. 계절은 어느 계절이어도 상관없지만 때는 일몰 무렵이었으면 참 좋겠다"며 그렇게 나도 내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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