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무조건적 복지는 경제 큰짐…성장 도움주는 복지가 답”
장하준 케임브리지大 교수 인터뷰
한국 고령화 속도 일본의 두 배

노동력 문제 해결안되면 성장 제동

이민자 적극 수용·출산지원이 대책

순혈주의 강한 한국은 복지로 귀결


한국경제 외부 충격에 취약

美·유럽·중국 등 불안요인 상존

대외개방 속도 완급 조절 필요

단기유동성 규제·내수진작도 숙제


장하준 교수는 고령화, 교육, 여성인력 등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점 많은 부분을 복지제도의 미비에서 찾았다. 심지어 성장까지도 복지를 하지 않으면 지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결국 거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들은 복지에 맥이 닿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복지는 이분법식이 아니라 균형과 타이밍에 맞춰져 있다. 그는 자신을 성장주의자라 했다.

-JP모건증권 수석 투자전략가인 기타노 하지메(北野一) 씨는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따라갈 수 있다”고경고하며 근거로 2020년까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 단축을 꼽았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일본엔 두 가지 문제가 있어요. 하나는 거시경제 문제인데 1985년 플라자 합의 후 엔화가 3배나 뛰면서 거품 생기고 그게 90년대 초에 터지는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지금도 휘청거리는 겁니다. 미국과 영국을 보면 거품이 터져 금융시장에 문제가 생기자마자 신속하게 국유화 공적자금 투입해서 해결합니다. 일본은 문제가 터진 한참 후에 개입하니 효과도 없었던 거죠. 그 다음은 장기적 구조적 문제로 급격한 고령화 사회에 잘 적응을 못했던 겁니다. 그 두 가지가 겹쳤어요.

-고령화 문제는 우리도 지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엄청난 문제입니다. 우리가 일본보다 속도가 빨라요. 거의 배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요.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단일 민족 자랑하지만 결국 고령화를 막으려면 두 가지의 방법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낳든지 이민이 많이 오든지.

-그게 결국 복지와 연결되는 문제 아닐까요.

▶당연하죠. 여성들이 아이 많이 낳고 길러야 하는데 탁아 교육문제 해결없이 그게 되겠어요? 제대로 된 복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세금은 더 내기 싫다고 하잖아요? 결국 할 수 없이 외국 이민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20~25%가 이민 출신으로 채워지는 걸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순혈주의 싫어하는 사람은 복지주의 싫어해요. 이런 문제를 굉장히 냉철하게 생각해야 할 때인데 복지고 이민이고 감정적으로 논의되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올해 한국에선 복지와 관련된 정치권의 논란이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한쪽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비중이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꼴찌여서 복지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원칙과 규율이 없는 복지정책은 무책임한 포퓰즘이라는 상반된 주장입니다. 무상급식 논쟁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모든 정책이 그렇습니다. 무조건 좋거나 나쁜 정책은 없어요. 사례를 찾아보면 별생각 없이 복지 나눠주다 경제 타격을 받은 나라들은 지금 많잖아요. 하지만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는 복지 잘해서 미국보다 더 성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복지는 무조건 포퓰리즘이고 반대편 시각에서 봐서 무조건 복지를 해야 한다 해서도 안 되죠.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국민 생활도 안정시켜주고 성장에도 도움이 될까하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을 바꿔야죠. 단기로는 안 되더라도 장기적으로.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 없겠지만 대다수가 수긍하지 않는 제도나 정책은 바꾼다고 해도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계속 설득을 하면 언젠가 바뀌게 돼 있어요. 

장하준 교수는 모든 정책이 장단점이 있으며, 어떤 시점에 어느 정도의 정책을 펴는지에 따라 성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며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지난해 말 국회 초청 강연에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반대 입장을 제기하셨는데 여전하십니까?

▶한ㆍ미 FTA는 의회 비준이 돼 있지 않습니다. 둘 다 안 해도 그만이에요. 주권국가인데 의회에서 비준 안 하면 그만이지요.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비준이 된 것을 안 한다면 문제가 되겠죠. 국민이 주권자로 반대할 수 있고 그 대표인 의회에서 안 한다는데 문제 될 것이 없어요. 미국이 그런 식으로 해서 더 따낸 것 아닙니까.

-그래도 약속인데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후진국 콤플렉스입니다. 선진국과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따돌림 받는다는 편집증이에요. 우리도 주권국가로 협상했고 행정부는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고 국회에서 얘기하면 되는 겁니다. 외국인에게 자랑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해야 한다는 멘탈리티를 벗어나야 합니다. 이 조약은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19세기에 영불 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해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이 많았는데 대부분 20년, 25년 한시적이었어요. 지금 하는 건 끝까지 가는 겁니다. 물릴 수도 없고 보통일 아닙니다.

-그럼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실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그걸 왜 했나 싶어요. 공연히 미국의 안보 압박받으면서 더 양보하고 완전히 자승자박이죠.

-올해 한국은 코스피 시가총액, 무역 총액 그리고 GDP 면에서 1조달러를 기록할 걸로 보입니다. 일종의 ‘삼면 돌파’인데 이제 한국은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국가가 아닌, 위에 올라 ‘사다리를 차 버리는’ 국가 위치에 서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판단의 근거를 덩치로 하면 한국은 세계 10위권이니 큰 나라죠. 하지만 선후진국 판단은 대개 1인당 소득으로 합니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1인당 소득은 3000달러, 우리나라 80년대 초 수준입니다. 아무도 중국을 선진국으로 보지 않잖아요. 우리의 1인당 소득은 40~50등 정도일 텐데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 중에 기름 팔아 사는 나라 빼고 보더라도 30~40위권이라고 봐야 합니다. 제일 잘 사는 나라가 4만달러에서 4만5000달러인데 우리는 환율에 따라 2만달러 정도로 딱 반입니다. 서유럽 중에 못하는 포르투갈이나 동유럽에서 잘사는 슬로베니아 정도예요.

-올해도 대외환경은 불확실성의 연속입니다. 한국 정부가 목표하는 5%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십니까? 또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선무가 무엇일까요?

▶사실 2008년에 세계 금융위기가 왔을 때 우리나라의 하강속도가 제일 빨랐어요. 세계경제가 돌아서니까 회복속도도 제일 빨랐어요. 경제가 그만큼 탄력있고 능력있다는 얘기지만 반대로 대외충격에 너무 취약하다고 볼 수도 있죠. 지금 우리만 잘한다고 경제 성장을 몇 퍼센트 이루고말고 그러긴 참 어렵습니다. 세계경제엔 여러 불안 요인이 있어요. 미국은 아직 상업용 부동산 거품이 위험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감세와 정부 지출 삭감을 너무 빨리 너무 많이 해서 위기가 다시 포르투갈, 스페인으로 넘어간다는 말도 나오죠. 중국도 순탄하게 성장할지 의문이고. 결국 우리만 잘한다고 잘되는 구도가 아니기 때문에 몇% 성장할 수 있다 해야 한다 이런 말은 참 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정부도 고민이 많겠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단기적으로 솔직하게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외 개방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다 컨트롤 할 수는 없어요. 장기적으로 불안요인 줄이는 대책을 마련해야죠. IMF 자본규제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시대 아닙니까. 떠밀려서 한 측면도 있지만 IMF도 단기유동성은 규제해야 한다는 상황이니까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내수 시장도 좀 더 진작해서 키워야 하고요.

-한국의 교육문제는 어떤 장관, 어떤 정권이 와도 해결하기 어려울 겁니다. 너무 많은 대학생, 대학가기 위한 학원, 현장과 동떨어진 교육 등 모든 부분이 ‘미스매칭’입니다. 대체 무엇부터 손을 봐야 할까요.

▶순수하게 경제적인 면만을 본다면 미스매칭 문제가 심각하죠. 한편으로는 계속 고용 안전성 떨어지는데 복지제도가 잘 안돼 있으니 젊은이들이 안정 위주 직장만 찾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술보다는 의사 공무원 변호사 중요한 직업에만 과도하게 몰려가는 현상이죠. 교육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옛날 상당히 성공을 거뒀던 실업계 고등학교가 유명무실화 됐잖아요. 이게 단순히 그런데 많이 가라 할 수도 없어요. 전망도 없는데 어떻게 주문하겠어요. 정책적으로 의도적으로 바꿔줘야 합니다. 지원을 많이 해주고 자격증 따면 정부가 월급에 프리미엄 얹어준다든가 하면 됩니다. 충분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60년대 초반에 보면 사농공상 의식이 뿌리깊게 박혀 다들 인문계 가려고 하니 인문계 1명당 이공계 0.6명 정도로 정부가 인문계 인원 억제, 석사 장교, 특수 지원 등 여러가지 정책을 써서 바꿔놓은 겁니다.

- 취업을 하려면 기업들과도 연결된 일이어야 할 텐데요.

▶그렇습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제공하는 방법을 자꾸 모색해야 합니다. 전문대 육성하고 4년제 대학에서도 산학 협동 통해서 기업들과 바로 연결되는 기술들을 가진 인력을 공급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요. 꼭 대학 가지 않아도 뜻깊은 자기만족스런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있으면 됩니다. 스위스는 대학 진학률이 가장 낮은데도 선진국입니다. 그래도 잘 사는 나라입니다. 대학 안 나와도 1억, 2억 받고 인정받고 안정적 환경에서 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걸 고민해야 합니다. 환경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정리 조현숙 기자/newear@heraldcorp.com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