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사퇴 표명을 함에 따라 인사 파동에 따른 여권 내 갈등은 일단 수습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4년차 국정운영에는 적지 않은 내홍과 후폭풍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태로 불거진 당ㆍ청 간 갈등이 언제든지 재점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데다,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인책론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으며 당장 감사원장 후임을 다시 지명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도 있다. 이번 사태로 MB정부 국정기조의 핵심이념이라 할 ‘공정사회’ 의 동력도 급속히 떨어졌다. 자칫 사태 수습에 시간이 걸릴 경우 ‘레임덕(권력누수현상)’ 우려가 확산될 수 있다는 점도 청와대의 고민거리다.
▶당ㆍ청 갈등, 발등의 불은 껐지만…=정 후보자의 자진 사퇴로 12ㆍ31개각 파동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당ㆍ청 갈등의 경우에도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 간 갈등 확산 방지에 관한 교감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일회성 당ㆍ청 갈등으로 수습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드물다. 당에서는 오래전부터 청와대의 일방통행식 정책추진과 인사에 대한 불만을 물밑에서 키워왔고 이번 사태는 단지 해묵은 감정이 곪아터진 것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당 저변에서 나오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앞으로도 여당을 거수기 정도로 인식한다면 비슷한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입장에서도 여당에 대한 불만이 커질 대로 커져 있다. “국정에 매진해야 할 시기에 여당이 뒤통수를 쳤다”는 볼멘소리가 여전하다. 이 대통령이 이같은 물밑 기류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해법을 내놓지 않을 경우 당ㆍ청 갈등은 언제든 재점화될 휘발성을 지닌 셈이다.
▶인사 파동, 레임덕 우려 여전=청와대 입장에서는 정 후보자 사태에 대한 여권의 인책론 주장도 풀기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다. 특히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인책대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은 국정운영과 관련,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일단 “한두 사람을 자르기보다는 문제가 있다면 시스템을 다시 점검하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인책론을 피해가려는 분위기다. 그러나 김태호 총리 후보자 낙마사태를 불러온 8ㆍ8 개각 이후 이미 내부 인사시스템을 조정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청와대의 입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안은 4개월 이상 자리가 비어 있는 감사원장 후임을 선임하는 일이다. 청와대는 정 후보자 거취논란 이후부터 후임자 재지명을 고려해왔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수개월 고민끝에 정 후보자를 내정했는데 이제 와서 또 다른 사람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면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이른 시간에 후임자를 물색해야 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집권 4년차 레임덕 차단이 당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당초 올해를 ‘일하는 해’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혔다. 집권 4년차에 국정 핵심사업들을 마무리해 성공적인 정부의 모범을 보인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밑그림이 인사파동으로 인해 또 한 번 제동이 걸리면서 최악의 경우 집권 후반기 구상 전반이 헝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춘병 기자@madamr123> yang@heraldcorp.com